융프라우 정상에 가기 위해 스위스 기차역에 도착했을 때, 창밖을 지나가는 기차 선로를 보며 문득 아버지가 떠올랐다. 아버지는 25년 넘게 철도 일을 하셨고, 나는 2년 동안 아버지를 따라 전국의 기차 선로를 함께 다닌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아버지와 함께 무거운 침목을 어깨에 메고, 자갈길을 걸어 산을 오르고, 그 속에 침목을 놓고 또 일을 했다. 겨울에도, 여름에도, 해가 뜨기 전부터 나가셨던 아버지의 모습은 내게 오래 남아 있는 기억이다.
나는 브랜드 옷과 좋은 신발을 좋아했고, 어릴 때는 그런 멋있는 것들이 인생의 전부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그래서 아버지를 따라 철길에 나가 일하던 어느 날, 나와 대여섯 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 철도 공무원이 25년 넘게 철도 일을 하신 아버지께 함부로 일을 지적하는 모습을 보며 큰 충격을 받았다. 아버지는 난처해하시며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이셨고, 나는 그 모습을 옆에서 보면서 말로 다 못할 감정을 느꼈다.
그때 깨달았다. 아버지는 우리 가족의 생계를 위해 그 긴 시간을 참고 견디셨다는 것을. 나는 내가 사고 싶은 것 하나 더 사기 위해 살아온 줄 알았는데, 아버지는 가족들을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참으며 살아오셨는지 그제야 보였다. 그날 이후 나는 울 시간조차 아깝다고 생각했다. 성공할 때까지 한눈팔지 않고, 자존심 버리고, 오직 목표와 꿈만 생각하며 살겠다고 마음먹었다.
그 뒤로 나는 옷 한 벌, 운동화 한 켤레로 사계절을 보내고, 명품보다 운동으로 몸을 만들고, 경차를 타고 다니며 남 눈치보다 내 목표를 더 크게 봤다. 그리고 2025년 1월 6일, 나는 다시 스위스에서 아버지와 기차 선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예전에는 아버지가 철길을 따라 걸으며 가족을 책임지셨다면, 이제는 내가 아버지와 가족들을 위해 더 큰 길을 만들어야 한다고 다짐했다.
스위스 융프라우에 올라 눈 덮인 알프스를 보며 부모님과 먹던 라면은 단순한 한 끼가 아니었다. 그건 그동안 아버지의 땀과, 내가 몰래 삼켰던 눈물과, 이제는 내가 책임지겠다는 다짐이 함께 담긴 맛이었다.
나는 명품 옷은 없어도 된다. 명품 백이 없어도 된다. 하지만 나는 가족들에게만큼은 가장 든든한 백이 되고 싶다. 비싼 가방이 아니라, 힘들 때 기대고, 흔들릴 때 버틸 수 있는 사람. 나는 그런 아들이 되고, 그런 가장이 되고, 그런 사람이 되려고 오늘도 버틴다.